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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이성님의 노블베이커리
40년 빵과의 교감
빵이요... 빵은 19살 때부터 시작했어요. 제가 19살 때니까 1980년이에요.
예전에는 지방에서 서울 올라오면 일단 의식주 해결을 해야 해서 숙소가 있는 직장을 구해야만 했어요. 수소문 하던 중 아는 이모님을 통해 제과점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제과점에 앉아 처음 빵이랑 우유랑 먹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촌사람이 보기에 너무 신기했죠. 당시 집에 형제가 많아 고향에서 학교를 다니다 못 다니게 됐어요. 야간학교라도 다니며 공부하겠다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처음에 간 곳이 너무 형편없는 곳이었어요. 신문배달 하며 일을 해야 하는데 불에 탄 자리에서 잠을 자게하고 밥도 대충 주고 그래서 몰래 도망 나오게 됐죠. 그 곳을 나와 영등포를 배회하던 중 아는 이모님을 만나게 되면서 저도 빵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다, 여기서 일하면 안 되냐고 부탁을 드리게 되어 한 3년 군대 가기 전까지 기술을 배웠죠.
그렇게 보조로 일을 시작하게 됐고 군대 다녀와서도 계속 제과점 일을 했어요. 그러다가 88년도에 처음으로 성남에 가게 문을 열었어요. 기술만 믿고 점포 열었다가 실패를 하면서 아, 뭐든지 자기 기술만 믿고 할 수 있는게 아니구나, 마켓팅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스물일곱 너무 젊은 나이에 빵집을 내면서 절실함을 못 느꼈던 거예요. 돈을 악착같이 벌어야 되겠다 이런 게 없고 놀러 다니고 싶으니까. 그때 와이프가 고생을 많이 했죠. 하하….그러면서 성남 빵집을 접고 서울로 다시 상경해서 마흔일곱까지 제과제빵 기술로 회사 생활을 하다가 수색에서 처음 가게를 열었어요. 가좌동에 문을 연지는 2년 됐어요. 상암동 DMC에서 3년, 그전에 수색에서 오래 했죠.
고등학생들 CA 활동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아이들한테, 선생님이 빵집을 하려고 하는데 좋은 이름이 뭐가 있을까 물으며 공모전을 열었어요. 노블 베이커리라는 이름을 그렇게 얻었는데 내 빵을 먹는 사람들은 다 귀족이다라는 의미로 더 건강하고 맛있는 빵을 만들자 이런 뜻이 담겨있죠.
장사의 기술
기능장 따면서 오십 중반에 사이버대학에서 외식경영학을 공부해서 졸업을 했어요. 더 좋은 빵 만드려면 계속 공부를 해야되더라구요. 처음 장사할 때부터 매장에 제가 글을 써서 붙였어요. 내 형제, 내 가족, 우리 자식들이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겠다. 그 정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고 있어요. 내 식구가 먹을 빵 만든다 마음먹으면 좋은 재료 선택해서 맛있게 만들고 잘못된 빵은 판매 안하고. 남으면 다음 날 아침 푸드뱅크에 기부를 해요. 푸드뱅크가 어려운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는 일을 하는 마켓이거든요.
어깨랑 손 뭐 성한데 없죠. 빵 굽는 팬을 매일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까지 들잖아요. 뜨거운 걸 많이 만지다보니 굳은살에 지문도 지워지고. 매일 아침 일곱시 정확하게 가게 문을 열어요. 그 전날 발효종들을 반죽을 해놓고 가거든요. 하루에 빵이 되는 게 아니라, 밑반죽을 해놓는 과정이 필요하죠. 빵을 만들다 보면 빵이 살아있는 것을 느껴요. 반죽을 딱 쳤을 때 손에 느낌이 오거든요. 이 빵이 잘 될 것인가 안 될 것인가, 교감하는 거죠. 어제 느낌과 오늘 느낌이 다를 수 있는데 일정하게 나와야 해요. 뭐든지 오래 하다 보면 그쪽의, 그 달인이라고 하잖아요. 달인이 되는 거예요.